<p></p><br /><br />20년간의 억울한 옥살이에도 윤성여 씨는 '감사'와 '용서'를 말했습니다. <br> <br>다만 다시는 억울한 피해가 없게 해달라고 부탁했는데요. <br> <br>31년 만에 무죄를 선고 받은 윤성여 씨의 오늘 하루를 제가 동행했습니다.<br><br>[리포트]<br>이른 아침 취재진을 만난 윤성여 씨 <br> <br>31년 전 차라리 악몽이길 바랐던 하루를 또렷이 떠올렸습니다. <br> <br>[현장음] <br>(간밤에 잠은 잘 주무셨어요?) 잠을 좀 설쳤어요. <br> <br>[인터뷰/ 윤성여 씨] <br>(그때 청년이셨는데 무기 징역 선고 받으셨을 때, 기억나세요?)<br>이름 부르고 무기 무기에 처한다. 그걸로 끝이에요. 몇 분 걸리지도 않아요. 5분도 안 걸려 <br> <br>20년 옥살이 끝에 마주한 낯선 세상을 버텨내기도 힘들었습니다. <br> <br>[인터뷰/ 윤성여 씨] <br>내가 80년대 90년대 딱 거기에 멈춘거야. 나와서 생활이 안되는거야. <br> <br>[인터뷰/ 윤성여 씨] <br>거기서 일을 하거든. 나올 때 딱 200만 원 갖고 나왔어요. (밖에서는) 한 달 일해 보니까 200만 원 벌더라고. 와 차이가. <br> <br>31년에 걸친 악몽, 그 종지부는 아이러니하게도 진범 이춘재의 자백이었습니다. <br> <br>[인터뷰/ 윤성여 씨] <br>(이춘재 씨 입에서 8차 사건 범행을 인정한다. 그 순간 기분은 어떠셨어요.)<br>뭐라고 이야기 할 수가 없어요. 그때 기분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거예요. 어떤 사람은 그러더라고. 그걸 어떻게 참고 견디냐. <br> <br>그리고 드디어 맞이한 오늘 재심 선고.<br><br>담담했던 윤 씨의 얼굴에 밝은 미소를 띄워준 건 그토록 간절히 듣고 싶었던 말, '무죄' 그리고 사과였습니다. <br> <br>[현장음] <br>(마지막에 법원장이 사과할 때) 그건 뭐 재판장님이 사과할 문제는 아닌데, 그 시대의 판사들이 사과를 했어야 정상인데… <br> <br>[현장음] <br>(후련하세요 선생님?) 속은 후련하죠 이제 30년 체증이 확 내려가는데. <br> <br>[현장음] <br>(아까 들어갈 때랑 지금 나올 때 발걸음이 좀 다르시죠?) 가볍지. 들어갈 땐 무거웠는데 나올 땐 가볍지. <br> <br>뒤이어 나온 말은 감사와 용서였습니다. <br> <br>[인터뷰/ 윤성여 씨] <br>용서라는 단어가 사실 참 쓰기 힘든 단어에요. 이춘재 씨가 자기가 다 했다고 해주고 미안하다고 얘기하는데 거기에 고마울 뿐이고. <br> <br>[인터뷰/ 윤성여 씨] <br>저 혼자 용서한다고 해서 나머지 피해자분들이 용서할 수는 없는 것이에요. <br> <br>[인터뷰/ 윤성여 씨] <br>경찰들도 자기들이 어느 정도 (잘못을) 얘기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공감은 다 해주는 거예요. <br> <br>용서를 베풀며 내놓은 간절한 부탁 하나는 자신 같은 억울한 형사 사법 피해자가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. <br> <br>[인터뷰/ 윤성여 씨] <br>지금도 억울한 사람들 없다고는 얘기는 못해요. 한 사람이라도 억울한 사람들이 없길 바랄 뿐이에요. <br> <br>여인선이 간다 였습니다.